콩코르드 광장(프랑스어: Place de la Concorde, 프랑스어 발음 plas də la kɔ̃kɔʁd)은 프랑스 파리의 광장으로 샹젤리제 거리 동쪽에 튈르리 공원과 사이에 위치한다. 면적은 86,400m2(8.64ha)로 파리에서는 가장 넓은 광장이다. 1755년 앙주자크 가브리엘이 설계한 이 광장에는 원래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이 15세 광장'으로 불리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기마상은 철거되고, 이름도 '혁명 광장'으로 고쳐졌다. 1793년 1월 21일 프랑스 혁명 중에는 루이 16세가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10월 16일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된 형장이기도 하다. 1795년 현재의 '콩코드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시작했고, 공식 이름이 된 것은 1830년 7월 혁명부터였다. 1835년 나폴레옹 3세 시기에 재조성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1836년 이집트 정부에서 선물한 룩소르 오벨리스크가 콩코르드 광장 정중앙에 직립하여 현재까지 파리의 명물로 남아 있다. 광장의 분수대와 원주도 비슷한 시기에 세워지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으며, 1900년 만국 박람회 입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리 해방 기념식, 2024년 하계 올림픽 개최장소 등 다양한 행사의 무대로 활용되었다. 콩코드(Concorde)는 화합, 일치라는 뜻으로, 이 광장의 이름은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넘어 평화와 화합으로 나가자는 프랑스의 염원이 담겨 있다. 파리 메트로에서는 1호선, 8호선, 12호선이 만나는 플라스 드 라 콩코르드역과 가깝다. 1748년 파리의 상인들이 루이 15세의 기마상을 세울 장소로서 광장 건설을 기획한 것이 기원이다. 당시 상인회에서는 국왕이 중병에서 회복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파리시 외곽의 튀일리 정원과 쿠르라렌 사이에 위치한 널찍한 산책공간을 동상 부지로 선정했다. 당시 이곳은 승마용으로 인기 있는 공간이었으며, 콩코르드 다리나 리볼리로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루아얄로는 센강 인근 습지까지 이어지는 진흙길 도로에 불과했다.[1] 이후 1772년 건축가 앙주자크 가브리엘이 설계를 기반으로 광장이 완공되었다. 광장은 팔각형 형태로 폭 20m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으며 돌다리가 교차하고 석조 난간을 둘렀다. 여덟 개의 모퉁이에는 광장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돌계단을 두었으며 화단으로 나누어졌다. 정원 정중앙에는 받침대를 두어 에드메 부샤르동이 조각한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놓였다. 이 기마상은 로마 장군의 복장을 하고 월계수 화한을 머리에 쓰면서 퐁트누아 전투에서 승리한 위풍당당한 국왕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받침대는 장 샬그랭이 설계하였으며 네 모서리마다 장바프티스트 피갈의 동상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위대한 군주라면 갖추어야 할 네가지 덕목 (권력, 정의, 신중, 평화)을 의인화한 것이었다.[2] 루이 15세의 기마상은 1763년 6월 20일 국왕에 헌정되었으나 이 무렵 루이 15세를 향한 대중의 인기는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실제로 헌정식이 열린지 머지않아 누군가가 조각상에 '조각상은 아름답구나! 받침대도 훌륭하구나! 미덕은 발 밑에, 악덕은 말 위에!'라 쓰여진 플래카드를 걸어두는 소동이 있었다.[3] 광장 북쪽에는 똑같이 앙주자크 가브리엘이 설계하여 1760년~1775년에 건설된 궁전 건물이 있었다. 이 건물은 루브르궁 (현 루브르 박물관)의 외관을 맡았던 왕실 직속 건축가 샤를 페로의 건축에서 영감을 얻어 고전주의 양식의 외관으로 장식되었다. 이곳에는 각국 대사관이 입주할 예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동쪽 건물에는 프랑스 해군 본부인 오텔 드 라 마린이, 서쪽 건물은 귀족들의 공동 별장이 되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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