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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책 수집가 인터뷰 – 검열과 자유의 경계에서

by 앙젤라또영 2025. 5. 29.

이 글은 ‘금지된 책’을 모으는 한 수집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읽을 자유의 역사’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그가 왜 금서를 수집하게 되었는지, 금서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금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따라가며, 검열이라는 거대한 장벽 너머에 존재했던 목소리들을 다시금 들여다봅니다.

 

금지된 책 수집가 인터뷰 – 검열과 자유의 경계에서
금지된 책 수집가 인터뷰 – 검열과 자유의 경계에서

 

금서 수집, 단순한 취미인가? – 수집가를 만나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래된 주택.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종이 냄새와 함께 책에 둘러싸인 작은 방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벽면 전체를 채운 책장마다 단단한 종이로 제본된 두꺼운 책부터, 얇고 손때 묻은 문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습니다. 이곳은 바로 금서 수집가 이○민 씨의 서재입니다. 20년 넘게 국내외에서 금지된 책만을 모아온 그는 현재 800권이 넘는 금서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구해야 할 책이 많다”는 걸 보면, 이 수집은 끝날 줄 모르는 여정입니다.

금서라는 이름의 무게

‘금서(禁書)’라는 단어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어떤 이에게는 단순히 희귀한 책일 수 있지만, 이씨에게 금서는 그 시대의 억압과 통제를 상징하는 물증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 책이 금지됐는지를 모르고 지나치기 쉬워요. 그러나 금서는 언제나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한 권의 책을 꺼내 보였습니다. 그것은 1970년대 독재 정권 하에서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었던 정치 철학서로, 소지 자체만으로도 경찰에 체포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그가 수집한 책 중에는 정치적 이유로 금지된 이념서, 종교 간의 갈등으로 인해 박해받은 종교서, 성적 표현 때문에 금서로 지정된 문학 작품, 그리고 검열의 손을 피해 지하에서 유통되었던 사회비판 서적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이 숨기고자 했던 이야기의 총체적 집합인 셈입니다.

수집의 시작, 그리고 경계 넘기

이씨가 처음 금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대학 시절, 한 고서점에서 우연히 구한 『율리시스』 때문이었습니다. “그 책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나더군요. 나중에야 그 책이 과거에는 금서였다는 걸 알고, 이유가 궁금해졌죠.” 당시에는 인터넷도 자료도 부족한 시절이었기에 그는 도서관과 외국 잡지, 교수들의 인터뷰까지 참고하며 하나씩 금서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그의 수집은 단순히 책을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금서가 금서가 된 이유, 책이 쓰인 시대와 정치 상황, 책이 불태워진 장소와 남겨진 기록을 조사하고 정리해 왔습니다. “책 한 권을 이해하려면 그 책이 숨겼던 시대 전체를 알아야 해요. 저는 금서를 책이라기보다 증언이라고 봅니다.”

그의 수집 철학은 ‘책을 통해 지워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목소리들이야말로 ‘가장 살아 있는 역사’라고 말합니다. 특히 독재와 전쟁, 종교적 갈등의 시기에는 책이야말로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였고, 검열은 그 두려움의 반영이었습니다.

 

금지된 책 수집가 인터뷰 – 검열과 자유의 경계에서
금지된 책 수집가 인터뷰 – 검열과 자유의 경계에서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서재

이씨의 서재를 둘러보면 시대의 역사가 종이 위에 켜켜이 쌓여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금서로 지정한 조선어 문학 작품이나 민족주의 출판물은 조선인의 정신과 언어를 말살하려 했던 식민지 통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는 “그 시기에는 조선어로 쓴 책도, 심지어 시집도 금서였어요. 언어를 금한다는 건 곧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죠”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씨의 수집품 중에는 구 소련의 반체제 번역서나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반혁명 서적’으로 몰렸던 철학 서적, 독일 나치 시대 유대계 작가들의 문학도 포함돼 있습니다. 하나같이 국가가 금지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지만, 공통점은 ‘사람의 생각을 통제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가끔 외국 수집가나 박물관 관계자들과 금서 교환을 하기도 하며, 국제 금서 아카이브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페인의 한 박물관과 협업해 만든 ‘디지털 금서 지도’는 전 세계에서 책이 금지되었던 지역과 내용을 한눈에 보여주는 작업으로, 한국의 사례도 포함돼 있습니다.

불온한 지식의 지도 – 시대를 가로지른 검열과 금서의 궤적

금서의 역사는 단순히 ‘출판 금지’로 시작되거나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어떤 시대의 권력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시대마다, 장소마다 검열의 기준은 달랐지만, 공통된 점은 ‘권력에 도전하는 목소리를 통제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금서 목록이란 단어조차 권력이 허용한 세계 너머를 드러냅니다.

예컨대, 중세 유럽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지적 세계를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을 운영했습니다. 이 목록에는 갈릴레이의 과학 저작,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문헌, 심지어는 고대 그리스 철학서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종교적 교리를 흔들 수 있는 모든 사상은 금서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책이 아니라, 생각 자체에 대한 검열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검열은 왕권과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실학 사상이 성리학적 질서를 위협한다고 판단되어 일부 저작들이 금서로 지정되었고, 청일전쟁 이후 근대적 사상서들이 유입되자 이 또한 반체제적으로 여겨져 출판 금지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20세기에는 국가 이념과 연결된 검열이 더욱 극단화됩니다. 나치 독일은 ‘정신적 불결’을 이유로 유대계 작가들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불태웠으며, 소련과 북한은 당에 반하는 책들을 아예 국경 너머로 반입조차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도 매카시즘의 여파로 ‘공산주의적’ 성향을 가진 작가나 작품이 학교 도서관에서 제거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금서는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닌, 말살된 자유와 침묵당한 진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특정 책을 아무 제약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 그 책을 읽기 위해 투옥되고, 고문당하며, 심지어 목숨을 걸었던 시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금서 수집가들은 그 침묵의 흔적들을 되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시대의 억압에 맞서 '잊혀진 목소리'를 보존하고, 검열의 역사를 증언하는 행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금서를 수집한다는 것은 결국, 금서를 만들어낸 시대를 직면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며, 자유에 대한 열망이 꺼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책장 속 자유 선언 – 금서가 오늘을 말하는 방식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책은 금지됩니다. 여성의 권리를 다룬 책,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소설, 혹은 특정 정치 체제를 비판하는 에세이까지, 금서의 범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넓고 정교해졌습니다. 21세기에도 금서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금서 수집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에 대한 애정으로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수집가 이○민 씨 역시 “금서는 과거의 사건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라 말합니다. 그의 수집 중에는 현재도 여전히 특정 국가에서 검열 중인 책들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이후 중동 지역에서 출판금지 당한 페미니즘 서적, 중국의 반체제 지식인 저서, 러시아의 독립언론 에세이집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씨는 금서가 갖는 ‘현실의 언어’를 전시하고자, 서울 외곽에 소규모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는 “단 한 사람이라도, 금서가 왜 금서가 되었는지,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면 이 작업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말합니다. 전시에는 책과 함께 당시의 신문 기사, 검열 통지서, 수기로 작성된 독서 기록까지 함께 소개돼 있어 금서의 맥락과 반응까지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오늘날 검열은 더 정교해졌고, 때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출판 금지보다는 알고리즘을 통한 노출 제한, 정치적 비판에 대한 사이버 공격, 특정 키워드에 대한 국가적 모니터링이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이런 시대에 금서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은, 말 그대로 '사상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투쟁의 한 방식이 됩니다.

따라서 금서 수집은 과거를 향한 회상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의 실천이 됩니다. 책장 한켠에 놓인 한 권의 금서는, 독자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읽고, 무엇을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