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주사위의 깊은 상징성과 의식적 맥락을 추적하며 그것을 집요하게 수집해온 한 인물의 서재로 들어가봅니다.
주사위의 기원 – 고대의 신과 운명의 언어
주사위의 시작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운명’을 해석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류 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주사위 유물은 약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이들은 점토나 동물 뼈를 깎아 만든 것으로, 우리가 아는 정육면체가 아닌 비대칭적이며 다양한 면을 가진 비정형 도형이었습니다. 이 형태는 의도적인 설계가 아니라 자연물의 형태에 기반한 것이며, 인간이 신의 뜻을 '무작위'로 받아들이는 초월적 장치를 상징합니다.
이 시기의 주사위는 단순한 무작위성이 아닌, 초자연적 질서에 접근하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예컨대, 주사위를 던졌을 때 특정 면이 보이면 신이 어떤 결정을 내렸다는 식의 신탁적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단순히 “운이 좋다”는 개념이 아닌, 신의 개입에 따라 현실이 결정된다는 신중한 사고를 전제합니다.
고대 이집트 – 사후 세계를 향한 주사위
이집트의 고대 게임인 사네트는 우리가 아는 주사위와는 조금 다릅니다. 막대기를 던지거나 작은 조약돌 형태의 도구를 사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불확실성을 해석해 나가는 ‘운명 게임’의 일종이었습니다. 사네트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자의 영혼이 사후 세계를 어떻게 통과하느냐를 묘사한 의례적 행위였습니다. 실제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는 장식된 사네트 보드가 발견되었고, 이는 사자의 여정에 필요한 상징적 도구로 간주되었습니다. 즉, 이집트에서 주사위는 사후 세계와의 통로였습니다.
인도 – 윤회와 업보의 기호
고대 인도의 찬카와 파차시는 오늘날 보드 게임의 원형과 유사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무겁고 철학적이었습니다. 이 게임에서 던지는 주사위는 주로 조개껍질을 가공한 형태로, 한 면은 평평하고 다른 면은 볼록해 특정 방향으로만 멈추는 구조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확률이 아닌, 삶의 선택과 결과의 필연성을 상징했습니다. 윤회 사상을 믿던 이들은 주사위를 통해 자신의 업이 다음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은유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이는 일종의 철학적 체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로마 – 신의 판단을 구하는 매개체
고대 그리스에서는 주사위가 신전에서 사용되었고, 실제로 신관들이 ‘운명의 도구’로 여겨 사용하던 주사위 유물이 다수 발견됩니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운명이란 주사위를 던지는 자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사위의 궤적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주사위는 인간의 의지가 미치는 마지막 행위이며, 그 결과는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반영하는 메타포인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 이르면 주사위는 좀 더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지만, 여전히 신전과 신탁의 도구로 쓰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고대 로마의 청동 주사위에는 ‘운명’이나 ‘신의 뜻’ 같은 문장이 새겨진 예도 존재합니다. 이는 주사위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운명을 문자로 새긴 상징체계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대 동아시아 – 복잡한 운명론과 결합
중국 주나라 시대에는 ‘점복’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고, 주사위와 유사한 도구를 통한 점술 행위가 성행했습니다. 예컨대 주역(周易)에서는 괘를 만드는 방식 중 일부가 동전 던지기와 유사하며, 이는 후에 ‘육효 주사위’로 발전하게 됩니다. 중국에서는 주사위를 통한 예언이 단순한 믿음이 아닌, 국가의 정책 결정, 전쟁의 개시, 왕의 즉위 여부까지 관여할 수 있는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사제의 손에서 제왕의 손으로 – 주사위의 정치적·제의적 권위
고대에서 주사위는 단지 무작위성을 탐구하는 도구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무작위성을 통해 초월적 질서, 나아가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수단으로 기능하곤 했습니다. 주사위의 ‘운명 결정력’은 점차 신의 의지를 대리하는 매개체로 간주되었고, 사제 계급이나 통치자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바빌로니아 – 신의 뜻을 구하는 관료 체계
기원전 2천 년경 바빌로니아에서는 천문학과 점성술, 숫자 계산을 통해 신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 체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들은 점토판에 새겨진 숫자표와 주사위 모양의 주물을 사용해 각 사건의 길흉을 판단했습니다. 어떤 왕이 전쟁을 개시할지, 농사를 시작할 시기가 언제인지 등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주사위를 던졌고, 그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신성한 절차였습니다. 당시의 주사위는 ‘운’이 아닌 ‘질서’를 대변했습니다. 질서 없는 인간 세계에 신이 명령을 내리는 방식이 바로 주사위였습니다.
중국 – 주역의 괘와 주사위의 기원적 연결
중국의 점술 체계에서도 주사위는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주역(周易)의 괘를 구성하는 방법 중 하나가 동전 던지기 방식이었고, 후에 여섯 면을 가진 ‘육효 주사위’로 발전하게 됩니다. 육효 주사위는 지금도 일부 도교 의식이나 전통 점술에서 사용되며, 각 면은 자연의 변화나 인간의 감정을 상징합니다. 주사위 하나가 ‘천도(天道)’와 ‘인사(人事)’를 이어주는 통로였던 셈입니다. 특히 황제 즉위나 제후의 반역 여부, 대홍수 예측 등 거대한 사건 앞에서 점술과 주사위는 정치 권력의 신적 정당성을 입증하는 도구로 작용했습니다.
고대 유럽 – 권력을 위한 주사위, 혹은 그것의 구실
로마 시대에 들어서면 주사위는 두 가지 양면적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는 제의적이고 신성한 것, 또 하나는 대중적 오락이자 권력을 위한 조작 가능한 기호였습니다. 예컨대 카이사르의 유명한 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실제로 정치적 결정의 순간에 신탁 주사위를 던지는 의식이 있었고, 이 말은 그 의식을 은유한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신의 뜻에 운명을 맡기되 그 이후엔 인간의 책임이란 무게를 감당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정치가가 신탁이라는 외피를 입는 순간, 권력은 신성성을 장착한 무기로 전환됩니다.
사라진 제의, 남겨진 조각 – 수집가의 서재에 깃든 운명의 흔적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고대의 주사위는 더 이상 사제의 손에서도, 제왕의 손에서도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잊힌 물건을 되살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고대 주사위를 수집하는 현대의 수집가들입니다. 이들은 박물관의 보존이 아닌, 개인의 기억과 해석으로 고대의 물성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중 한 사람, 한국에서 활동 중인 ‘고대 주사위 수집가’ 윤○○ 씨를 만나 그의 서재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운명을 만지는 손
윤 씨의 서재는 마치 작은 박물관과도 같았습니다. 진열장에는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점토 주사위, 로마 시대 청동 주사위, 고대 인도의 조개껍질 주사위, 중국 도교 점술 주사위 등 100점이 넘는 고대 주사위가 세밀하게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단지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사위 하나하나의 제의적 맥락, 역사적 배경, 사용된 장소와 시기의 정치적 사건까지 일일이 기록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사라진 제의를 다시 해석하고 보존하는 민간 기록자이자 문화연구자의 자세입니다.
윤 씨는 “주사위는 작은 조각이지만, 그것을 들여다보면 시대 전체가 보입니다. 왜 이 모양이었는지, 왜 이 문장이 새겨졌는지, 왜 이 재료였는지를 생각하는 순간, 주사위는 도구가 아니라 증언자가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수집은 단순한 수량의 축적이 아니라, 사라진 제의의 재구성입니다.
무작위의 신성성, 그리고 현대의 해석
흥미롭게도, 윤 씨는 현대에도 고대 방식의 주사위 던지기를 간간히 행합니다. 주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예를 들어 전시회 개최일이나 기증처 선택 등에 주사위를 던지는 의식을 통해 스스로의 책임을 성찰하는 과정을 갖습니다. 이는 고대의 방식이 단지 전시용 복제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에도 작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의례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주사위를 소재로 한 예술가, 철학자, 종교학자들과 교류하며, 그 상징성과 현대적 재해석을 주제로 다양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단지 과거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방식으로 현대를 질문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수집가의 안목 – 운명을 수집한다는 것의 의미
서울 은평구의 한 빌라 지하, 조명도 흐릿하고 습기도 약간 느껴지는 공간에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곳은 고대 주사위만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수집가 조민규 씨(가명)의 개인 소장 공간입니다. 책장, 유리장, 금고, 심지어 전자 현미경까지, 모든 것이 '운명'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고대 유물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조 씨는 지난 18년간 약 250여 점의 고대 주사위를 수집해 왔으며, 이 중에는 박물관에서도 보기 어려운 기원전 2천 년경의 수메르 주사위, 한나라 말기 점술 주사위, 르네상스 시대의 신화 문양 주사위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의 수집은 단순한 ‘완성’을 위한 집착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과거의 의식을 수집하는 사람”이라 표현합니다. 즉, 형태가 아니라 의도와 의미, 사용자의 심리와 시대적 문맥을 함께 보존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고대 주사위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보여요. 그 시대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 믿었던 신, 금기시한 주제들… 주사위는 운명의 촉수였어요.”
그는 특히 '수집물의 상태'보다는 '배경이력'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 예컨대, 어떤 고대 주사위는 출토된 위치와 함께, 당시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앙적 배경이 추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조 씨는 해당 주사위를 ‘실물 기록물’이라 부르며, 단순한 장식품 이상의 의미로 다룹니다.
조민규 씨는 자신의 수집 방향을 세 가지 기준으로 정리합니다.
- 제의적 맥락이 명확한 유물 – 단순 오락용이 아닌, 종교나 국가 의식, 점술의 용도로 사용된 유물에 중점을 둡니다. 예컨대 이집트의 사제 무덤에서 출토된 목제 주사위가 대표적입니다.
- 문화 간 전파 경로가 있는 유물 – 그리스의 주사위가 로마로, 로마의 주사위가 중세 유럽으로 전파된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유물을 우선시합니다.
- 문자, 기호, 상징이 있는 주사위 – 주사위 면에 단순한 숫자 대신 신의 이름, 별자리, 상형문자, 주역의 괘 등 상징 체계가 포함된 유물은 반드시 연구 대상이 됩니다
정리하며
고대의 주사위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선택을 포기하고, 더 큰 힘에 결정을 맡기는 의례적 행위였습니다. 주사위의 기원은 바로 그 신성성과 운명에 대한 인간의 겸손에서 비롯되었고, 문화마다 주사위를 통해 신의 의지, 윤회, 철학, 혹은 정치적 판단을 해석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안에 있는 낡은 주사위를 볼 때, 그 안에 담긴 인류의 질문과 두려움, 믿음과 해석의 역사를 함께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선택과 운명에 대한 묵직한 성찰이 될 수 있습니다.